“친절한 한수원씨, 대국민 기만극 벌이다”
“친절한 한수원씨, 대국민 기만극 벌이다”
  • 박재구 기자
  • 승인 2017.07.18 0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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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치밀한 1박2일 이사회 개최 각본 짜 노조·지역주민·언론 기만
14일 아침 이사회 기습 개최…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 가결

▲ 지난 13일 한수원노조원들이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참석을 저지하기 위해 경주 본관 출입문을 막고 있다.
“우리가 당했습니다. 보문 스위트호텔에서 이사회가 열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긴급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회사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7월 14일 오전 9시 43분 한수원노조 관계자로부터 날아온 톡이다.

이 톡을 확인한 곳은 지난 13일 열릴 예정이었던 한수원이사회가 무산된 후 14일 상경키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영천IC를 6km 남겨둔 지점이었다. 영천IC에서 차를 돌려 다시 경주 보문에 위치한 스위트호텔로 급하게 차를 몰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설마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했던 순진한 예측이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 한수원 이사회, 미리 짠 각본대로 진행된 한편의 연극

지난 10일 한수원은 문자를 통해 13일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과 관련한 이사회 개최 일정을 언론에 알렸으며, 이례적으로 언론에 이사회 일시와 장소, 안건까지 사전에 친절하게 알렸다. 그것도 3일전에. 이번처럼 이사회 일정을 상세하게 언론에 알린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이사회 장소는 통상 회사 외부에서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번처럼 노조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 민감한 안건이 다뤄지는 경우 공개치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전에도 노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공개치 않고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개최한 사례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노조와 지역주민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린 이번 이사회의 시간과 장소를 공개하고, 그것도 노조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회사 내부에서 개최키로 한 친절함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수원은 13일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열릴 것으로 생각지 않았고, 아니 정상적으로 개최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노조가 극렬하게 반발하고 막을 것은 불 보듯 뻔했고, 회사는 노조의 물리적 반발을 또 다른 물리력을 동원해 돌파할 생각이 없었다. 이날 한수원으로 요청으로 경주 본사에 배치된 경찰병력 1,000여명이 언제든지 투입될 준비를 갖추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날 이사회 참석차 경주에 내려온 6명의 비상임이사(사외이사, 1명은 병환 이유로 불참석)는 예정시간 3시 이후 2차례 점잖게(?) 본관 진입을 시도했고, 당연히 노조에 막혀 불발되자 ‘이런 상황에서 오늘 이사회 개최는 힘들지 않겠냐’라는 언론 인터뷰를 남기고 오후 5시 20분경 회사를 떠났고, 곧이어 5시 30분경 홍보실장이 기자실을 찾아 공식브리핑을 통해 ‘금일 이사회가 무산됐으며, 향후 이사회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기습적인 이사회 개최를 우려해 당일 12시까지 본관 정문을 지켰고, 더 이상의 이사회 개최 시도는 없었다. 노조는 13일 이사회 개최 저지에 성공했다고 판단했고 다음 이사회 때까지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기자들 역시 홍보실장의 공식브리핑 이후 취재를 마치고 한수원 본사를 떠났고, 다음 이사회는 최소한 그 다음 주에나 열릴 것으로 대부분 예상했다.

▲ 한수원은 지난 14일 경주 보문단지에 위치한 스위트호텔에서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개최해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경주 스위트호텔 전경.

■ 한수원, 사전 각본 가동 14일 오전 9시 기습 이사회 개최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예상치 못했던 각본은 다음날인 14일 그 실체를 드러냈다. 노조가 13일 이사회 개최 저지 성공에 취해 안심하고 있는 상황을 틈타 회사는 14일 오전 8시 30분 경주 보문단지에 위치한 스위트호텔 세미나실에서 13명의 이사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개최해 12대 1로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 계획안’을 가결했다. 상임이사 6명을 포함한 이사 12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유일하게 비상임이사인 조성진 이사(부산 경성대 에너지학과 교수)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노조는 14일 오전 9시경 이사회 개최 시도 정황을 파악하고 장항리 본사에서 스위트호텔로 급히 달려갔지만 9시 40분경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결을 마친 상태였다. 노조는 의결을 끝마치고 나오는 이사들과 조우해 거칠게 기습 이사회 개최에 대해 격렬히 항의했지만 이미 항구를 떠난 배를 다시 붙잡아 올 수는 없는 상황에 허탈감을 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영천IC에서 차를 돌린 기자가 10시 30분경 스위트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노사 양측 모두 호텔을 떠난 상태였고, 호텔 관계자를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호텔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이번 1박 2일의 이사회 일정이 사전에 치밀하게 짜여 진 각본에 의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게 됐다.

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한수원은 13일 비상임이사들이 노조에 막혀 5시 20분경 회사를 떠나고 5시 30분경 홍보실장의 이사회 개최 무산을 알리는 공식브리핑이 끝난 후 30분 정도가 지난 6시경 14일 이사회 개최를 목적으로 스위트호텔 세미나실을 예약했고, 13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세팅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공식브리핑에서는 기자들에게 다음 이사회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거짓 발표를 하고선 한편에선 사전 각본대로 14일 아침 이사회 개최를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비상임이사들 역시 사전 각본대로 13일 노조의 저항에 못이기는 척 연기하고 떠난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리 준비된 모처(보문단지 내 호텔로 예상되는)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14일 아침 이사회에 참석한 것이다. 한수원이 마련한 각본에 따라 그럴듯한 연기를 펼친 것이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 착각한 연기를. 하지만 연기란 것을 의심받을 만한 정황이 여러 드러났다.

이사회 담당부서인 한수원 기획팀은 이번 이사회 일정이 사전에 만들어진 각본에 의해 치밀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과 추론에 대해 아니라고 딱 잘라 부정하지 못하고 한숨으로 긍정의 표시를 대신했다. 또한 이번 각본 준비를 지시한 최종 명령권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했지만 답변할 수 없는 위치인지라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또한 한수원이 사전에 14일 아침 이사회 개최 계획을 사전에 세우지 않았다면 13일 6시경 스위트호텔을 예약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비상임이사들 역시 13일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주에 집단적으로 머물러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런 정황들이 사전 각본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한수원은 13일 이사회 장소를 본사로 전하고 일정을 친절하게 공개하면서 노조로 하여금 이사회 개최를 저지하도록 유도했고, 노조의 반발에 막혀 이사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상황을, 회사도 어쩔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언론으로 하여금 증명하게 만들어 이사회 개최 무산에 대한 명분을 얻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노조 즉 직원들과 지역주민을 속이고 거기에 더해 언론까지 들러리로 내세운 한수원의 13일 이사회 개최 무산을 주제로 한 연극은 14일 아침 기습적인 이사회 개최라는 비겁한 방법만 아니었다면 완벽히 성공할 수도 있었을 듯하다.

하지만 이번 연극은 결론적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한수원은 이번 연극을 통해 명분도 얻지 못했고, 신뢰도 스스로 잃어버렸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13일이 아니어도 조만간 이사회를 통해 이번 안건이 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공기업인 한수원이 감독기관이 산업부의 압력을 끝까지 거부할 수 없고, 스스로 독이 든 성배를 마셔야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다만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이번과 같이 비겁한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도대체 무엇이 그리 급해서,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스스로 제 팔을 잘라내는 결정을 대국민 기만극 수준의 연극을 통해 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상임이사든 비상임이사든 정부의 일방적 결정과 그것을 수용토록 강요하는 압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를 보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저 협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산업부의 지시에 말 한마디 못하고 납작 엎드리는 비굴함의 연극 대신 깨질 줄 알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척이라도 하는 안쓰러움의 연극을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인지...

이번 1박 2일에 걸친 한수원 이사회 개최는 산업부 연출, 한수원 각본 하에 이사들 연기가 어우러져 만들어 낸 대국민 기만 연극이었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며, 신뢰와 소통을 표방하고 있는 새로운 정부의 도덕적 수준을 의심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저질 코미디에 불과하다. 무슨 변명과 해명을 하더라도 산업부와 한수원은 원자력산업에 대한 신뢰 회복 노력을 제 손으로 다시 한 번 더 깎아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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